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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? <P>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</P> <P>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</P> <P>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.</P> <P> 입술을 다문 하늘아, 들아</P> <P>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!</P> <P> 네가 끌었느냐, 누가 부르더냐, 답답워라. 말을 해 다오.</P> <P>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</P> <P>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,</P> <P>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.</P> <P>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,</P> <P>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</P> <P>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,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.</P> <P>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.</P> <P>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</P> <P>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,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.</P> <P>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.</P> <P>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.</P> <P>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.</P> <P>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.</P> <P>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</P> <P>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,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.</P> <P>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</P> <P>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</P> <P>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.</P> <P>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,</P> <P>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</P> <P>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.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.</P> <P>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.</P> <P> </P> <P>월간 『개벽』1926년 발표</P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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